개인퇴직연금 가입 전 따져볼 5가지 숫자

얼마 전 상담에서 한 고객이 개인퇴직연금에 900만 원을 넣으면 연말정산 때 148만 5천 원을 그대로 돌려받느냐고 물었습니다. 계산식은 맞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미 연금저축에 납입한 돈이 있는지, 실제로 낼 세금이 얼마나 남았는지에 따라 결과는 달라집니다. 개인형퇴직연금(IRP)은 퇴직금을 모아 운용하거나 본인 돈을 추가로 넣을 수 있는 계좌입니다. 가입을 결정할 때 저는 공제율보다 돈을 언제 쓸지부터 묻습니다.
1. 900만 원은 입금 한도가 아니라 세액공제 한도입니다
국세청 기준으로 연금저축과 IRP 등 퇴직연금에 본인이 납입한 금액을 합쳐 연 900만 원까지 세액공제 대상이 됩니다. 이 가운데 연금저축만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금액은 600만 원입니다. 연금저축에 이미 600만 원을 넣었다면 IRP에 300만 원을 더 납입해 공제 한도를 채울 수 있습니다. 연금저축에 900만 원, IRP에 900만 원을 각각 넣었다고 해서 1,800만 원이 모두 공제되는 구조는 아닙니다.
여기서 퇴직할 때 회사가 IRP로 보낸 퇴직급여는 구분해야 합니다. 그 돈은 세금 납부를 뒤로 미룬 퇴직소득이지, 올해 내가 추가로 납입해 세액공제를 받는 금액이 아닙니다. 상담 때 가장 자주 섞이는 숫자가 바로 이 부분입니다. 계좌 잔액과 올해 공제 대상 납입액을 따로 확인해야 합니다.
2. 148만 5천 원은 누구에게나 돌아오는 돈이 아닙니다
총급여가 5,500만 원 이하인 근로자는 세액공제율이 소득세 기준 15%이고, 이를 지방소득세까지 포함해 흔히 16.5%라고 말합니다. 5,500만 원을 넘으면 각각 12%, 13.2%입니다. 다른 조건이 같고 900만 원 전액이 공제 대상이라면 계산상 차이는 148만 5천 원과 118만 8천 원, 즉 29만 7천 원입니다.
하지만 이는 받을 수 있는 최대 효과를 계산한 금액입니다. 다른 공제를 적용한 뒤 실제로 부담할 세금이 적다면 공제액을 다 쓰지 못할 수 있습니다. 가령 적용할 세액공제가 148만 5천 원이어도 남은 세금이 80만 원이라면 그 해 절감되는 세금은 80만 원을 넘지 않습니다. 또 연말정산 환급액은 이미 원천징수된 세금과 최종 세금의 차이입니다. 세액공제 계산액을 통장에 들어올 환급액과 동일하게 보면 자금 계획이 어긋납니다.
3. 55세 이전에 쓸 돈이라면 세금보다 인출 조건이 먼저입니다
상담실에서 흔한 가정을 해보겠습니다. 2년 뒤 전세보증금에 보탤 300만 원을 IRP에 넣고, 그해 13.2%에 해당하는 39만 6천 원의 공제 효과를 얻었다고 합시다. 이후 일반적인 사유로 계좌를 해지해 그 300만 원이 세액공제를 받은 납입액으로 과세된다면 지방소득세를 포함한 기타소득세는 16.5%, 즉 49만 5천 원입니다. 운용수익이 있다면 그 수익에도 과세될 수 있습니다. 39만 6천 원을 받으려고 묶은 돈에 49만 5천 원의 세금이 붙는 셈입니다.
그렇다고 IRP에서 돈을 꺼내면 언제나 같은 세율이 적용되는 것은 아닙니다. 세액공제를 받지 않은 납입액, 퇴직급여, 운용수익은 인출 시 세금 성격이 서로 다릅니다. 법에서 정한 중도인출 사유나 의료비 지출 등은 요건과 증빙에 따라 처리도 달라집니다. 급전이 필요할 때 예금처럼 일부만 자유롭게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하면 곤란합니다. 전세금, 주택 구입 자금, 1~2년 안의 교육비는 별도의 유동성 자금으로 두는 편이 낫습니다.
4. 수익률 1%포인트보다 실제 비용과 운용 상태를 보세요
IRP 계좌를 열었다고 돈이 자동으로 불어나는 것은 아닙니다. 예금성 상품을 고를지, 펀드나 상장지수펀드에 투자할지에 따라 수익과 손실이 달라집니다. 입금한 뒤 매수 지시를 하지 않아 대기성 자금으로 오래 두는 경우도 봤습니다. 높은 기대수익률을 이야기하기 전에 현재 돈이 무엇에 들어 있는지 확인할 이유입니다.
수수료 차이도 숫자로 환산해볼 만합니다. 적립금이 3,000만 원일 때 연 0.3%의 계좌 수수료는 단순 계산으로 한 해 9만 원입니다. 같은 적립금에 연 0.1%라면 3만 원으로, 차이는 6만 원입니다. 상품 자체의 운용보수까지 더하면 실제 비용은 더 커질 수 있습니다. 다만 금융회사마다 퇴직급여와 개인 납입금에 적용하는 요율, 비대면 가입 할인 조건이 다릅니다. 화면에 적힌 ‘수수료 0원’만 보고 모든 투자 비용이 없다고 받아들이지는 않습니다. 고용노동부와 금융감독원의 비교공시에서 수익률과 비용을 함께 보는 편이 정확합니다.
5. 받을 때도 55세와 5년을 구분해야 합니다
일반적으로 세법상 연금으로 받으려면 55세 이후에 수령을 신청하고, 계좌 가입일부터 5년이 지나야 합니다. 다만 퇴직급여를 IRP로 옮긴 이연퇴직소득을 인출할 때는 5년 가입 요건의 예외가 있습니다. 수령액이 법정 연금수령한도를 넘으면 초과분은 연금 외 수령으로 취급될 수 있으니, 55세가 되었다고 한 번에 찾아도 같은 세제 혜택을 받는다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받는 돈의 출처도 중요합니다. 세액공제를 받은 납입금과 운용수익을 요건에 맞춰 연금으로 받으면 나이에 따라 소득세 기준 3~5%의 연금소득세율이 적용됩니다. 반면 IRP에 들어온 퇴직급여는 별도로 계산한 퇴직소득세를 기준으로 연금 수령에 따른 경감 비율이 적용됩니다. 가입할 때 공제액 하나만 적어두기보다, 퇴직급여와 개인 납입금을 각각 얼마씩 넣었는지 기록해두면 나중에 수령 계획을 세우기 편합니다.
제 가족이라면 당장 쓸 돈과 비상자금을 먼저 확보한 뒤, 오래 묶어둘 수 있는 금액만 IRP에 넣겠습니다. 900만 원을 채우는 것보다 내 세금, 현금 필요 시점, 실제 비용에 맞는 납입액을 정하는 일이 더 중요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