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금저축계좌 만들기 전 따질 4가지 숫자

상담하다 보면 연금저축계좌에 돈을 넣으면 납입액의 16.5%를 무조건 돌려받는다고 생각하는 분이 꽤 있습니다. 그런데 세액공제에는 한도가 있고, 나중에 돈을 꺼내는 방식에 따라서도 세금이 달라집니다. 가입 버튼을 누르기 전에 저는 네 가지 숫자부터 같이 봅니다.
1. 연 600만 원과 900만 원은 서로 다른 한도입니다
연금저축계좌 납입액 가운데 세액공제 대상은 연 600만 원까지입니다. 개인형 퇴직연금인 IRP까지 합친 연금계좌 공제 한도는 연 900만 원입니다. 따라서 연금저축에 600만 원, IRP에 300만 원을 넣으면 두 한도를 모두 채웁니다. 월 납입액으로 바꾸면 각각 50만 원과 25만 원입니다.
공제율은 근로소득만 있다면 총급여 5,500만 원 이하일 때 15%, 초과할 때 12%입니다. 지방소득세까지 감안해 흔히 말하는 체감 공제율은 각각 16.5%, 13.2%입니다. 연금저축에 600만 원을 넣었을 때 계산상 절세액은 99만 원 또는 79만 2,000원입니다. IRP를 더해 900만 원을 채우면 각각 148만 5,000원 또는 118만 8,000원입니다. 종합소득이 있는 경우에는 총급여 대신 종합소득금액 4,500만 원을 경계로 공제율이 갈립니다.
다만 이 숫자를 그대로 환급액으로 기대하면 곤란합니다. 국세청의 연금계좌 세액공제는 납입액을 기준으로 계산하지만, 실제 공제는 낼 세금의 범위 안에서 이뤄집니다. 이미 다른 공제로 세금이 거의 없다면 연금저축을 한도까지 채워도 기대한 만큼 돌려받지 못할 수 있습니다. 납입액부터 정하기 전에 지난해 연말정산 결과에서 결정세액을 확인하는 이유입니다.
2. 55세보다 먼저 쓸 돈이라면 세금부터 계산해야 합니다
연금저축계좌의 절세 효과는 노후에 연금으로 받을 때까지 돈을 유지한다는 전제가 붙습니다. 일반적인 연금수령 요건은 만 55세 이후에 개시를 신청하고, 계좌 가입일부터 5년이 지난 뒤, 연금수령한도 안에서 인출하는 것입니다. 55세가 됐다고 잔액을 한 번에 빼도 모두 연금수령으로 처리되는 것은 아닙니다.
국세청 안내에 따르면 세액공제를 받은 납입액과 운용수익을 일반적인 사유로 연금 외에 인출하면 기타소득세가 부과됩니다. 지방소득세를 포함하면 16.5%입니다. 예를 들어 공제율이 13.2%인 사람이 600만 원을 넣어 계산상 79만 2,000원을 공제받고, 나중에 공제받은 납입액 600만 원을 연금 외로 인출한다면 그 금액에 대한 세금은 99만 원입니다. 운용수익이 있다면 그 부분도 과세 대상이 됩니다. 납입할 때 받은 공제만 보고 단기 저축처럼 쓰기 어려운 이유입니다.
세액공제를 받지 않은 납입 원금은 인출할 때 과세 대상에서 제외됩니다. 그래서 중도 인출을 검토한다면 잔액 전체에 16.5%를 곱할 일이 아닙니다. 금융회사에서 공제받은 금액, 공제받지 않은 금액, 운용수익을 구분해 확인해야 실제 세금을 계산할 수 있습니다. 의료비나 천재지변처럼 법에서 정한 사유에는 다른 과세 규정이 적용될 수 있으니, 해당 사유와 증빙 요건도 함께 확인하는 편이 안전합니다.
3. 연금으로 받아도 수령액과 나이를 봐야 합니다
요건에 맞춰 연금으로 받으면 세액공제를 받은 납입액과 운용수익에 연금소득세가 적용됩니다. 지방소득세를 포함한 일반적인 원천징수세율은 수령 당시 나이에 따라 70세 미만 5.5%, 70세 이상 80세 미만 4.4%, 80세 이상 3.3%입니다. 공제받지 않은 납입 원금은 이 과세 대상에 들어가지 않습니다.
여기서도 ‘연금이면 언제나 5.5% 이하’라고 외우면 틀릴 수 있습니다. 사적연금의 과세 대상 수령액이 연 1,500만 원을 넘으면 종합과세를 하거나 16.5% 분리과세를 선택하는 문제가 생깁니다. 다른 소득과 연금수령 계획에 따라 유리한 방식이 달라집니다. 퇴직 무렵에 여러 연금계좌를 한꺼번에 개시하려는 분에게 연간 수령액을 먼저 적어보시라고 하는 까닭입니다.
4. 계좌 종류보다 안의 상품과 비용이 더 중요합니다
연금저축계좌를 만들었다고 수익률이 정해지지는 않습니다. 연금저축펀드는 담는 펀드나 상장지수펀드에 따라 가격이 오르내리며 원금 손실이 날 수 있습니다. 연금저축보험은 납입 방식과 사업비, 해지 시 환급액을 봐야 합니다. 이름에 ‘연금저축’이 붙었다는 이유만으로 둘을 같은 저축상품처럼 비교하면 중요한 차이를 놓칩니다.
비용도 숫자로 바꿔 보면 감이 옵니다. 잔액 3,000만 원에 적용되는 연간 비용이 0.5%와 0.2%라면, 잔액이 같다는 단순 가정에서 한 해 차이는 9만 원입니다. 실제 비용은 상품과 거래 조건에 따라 다르고 잔액도 움직이지만, 오래 보유할 계좌라면 이 차이를 무시하기 어렵습니다. 가입 화면의 예상 수익률보다 상품별 보수와 중도 해지 조건을 먼저 읽는 편이 낫습니다.
제 가족이라면 비상자금과 가까운 시기의 주거·교육비를 먼저 따로 마련한 뒤, 오래 묶어 둘 수 있는 금액만 연금저축계좌에 넣겠습니다. 월 50만 원이 부담스럽다면 적은 금액으로 시작해도 됩니다. 세액공제 한도를 채우는 것보다 그 돈을 연금 받을 때까지 지킬 수 있는지가 더 현실적인 기준입니다.
